글로벌 금융 시장의 지형 변화 속에서 한국 국고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은 단순히 금융 시장의 한 단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ESG 경영 확산이라는 거시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국제 사회는 기후 변화 대응, 사회적 책임 강화,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 등 ESG 가치를 기업 경영의 핵심 요소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금융 시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국고채의 WGBI 편입은 외국 자본의 안정적인 유입을 촉진하고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한국 경제의 ESG 경영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지난 10월, 한국 국고채는 약 2년간의 관찰 대상국 지정 과정을 거쳐 WGBI 편입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국고채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울여 온 제도 개선 노력의 결실이다. WGBI는 영국 FTSE 러셀이 산출하는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로, 약 2조 5000억~3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추종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WGBI 편입 기준은 정량적 기준과 정성적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한국은 이미 국가신용등급 A- 이상 및 국채 발행 잔액 500억 달러 이상이라는 정량적 기준을 충족해왔다. 그러나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 제고라는 정성적 기준 충족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23년 1월 외국인 국고채 투자 비과세 조치를 시행하고, 12월 투자자등록제를 폐지하는 등 과감한 조치들을 단행했다. 이어 2024년에는 유로클리어 및 클리어스트림과의 국채종합계좌 개설,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은행 간 시장 참여 허용, 비거주자 제3자 원화 거래 허용 및 외환시장 개장 시간 연장 등 외환시장 개방을 통해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을 대폭 확대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은 한국 국고채 시장을 더욱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장으로 변화시켰으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채권 시장에 대해 느끼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FTSE Russell은 2024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WGBI 편입 비중을 2.22%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3년간 약 75조 원에서 90조 원에 달하는 신규 외국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자금 유입은 한국의 재정 정책 수행을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을 절감시키고 외환 시장의 수급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WGBI 편입은 국채 금리를 평균 0.2%~0.6% 낮출 수 있으며, 이는 시장 전반의 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WGBI 편입은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이 외국인의 국내 보유 자산 규모를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점차 완화되어 왔는데, WGBI 편입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WGBI를 추종하는 자금은 지수 편입 비중에 따라 수동적으로 운용되므로 유출입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급격한 외국 자본 유출이라는 과거 IMF 외환위기와 같은 불안 요소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가 현재 6.4년에서 한국 국고채의 평균 만기 수준인 12.6년에 근접해 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투자의 장기화와 단기 외채 비중 감소로 이어져 한국 채권 시장의 안정성과 장기적인 투자 기반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WGBI 편입이 한국 국채 시장이 직면한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잠재성장률 하락, 고령 인구에 대한 의무지출 확대 등 구조적인 도전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상승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정치 상황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원화 가치 및 국내 주식 가치 하락 배경에는 단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와 그로 인한 구조적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도 일부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WGBI 편입을 통한 금융 시장 안정이라는 성과에 안주하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이제는 이러한 과제 해결에 더욱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