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팔거산성 발굴조사에서 신라 석축성벽의 초기 형식이 처음으로 확인되며, 한국 고대 방어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대구광역시 북구청과 함께 진행한 이번 조사 결과는, 과거 신라가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성을 축조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개별 유적의 발견을 넘어, 고대 사회의 기술력과 조직 운영 방식까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로 평가된다.

이번 발굴의 핵심은 ‘협축식 성벽 구조’의 발견이다. 대구 팔거산성은 함지산 정상부에 자리한 ‘테뫼식’ 산성으로, 5세기 이후 신라가 고구려·백제와 대치하던 시기에 서라벌 서쪽 최전방인 팔거리현(달구벌)에 수도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축조된 석축산성이다. 조사 결과, 외벽 상부와 내벽을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 등지게 쌓아 올린 협축식 성벽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이는 당시 신라의 성곽 축조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초기 사례로, 기존에 알려진 축조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성벽 축조 방식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초축 체성의 외벽 하부는 편축식으로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으며, 상부는 협축식으로 조성됐다. 특히, 외벽 하부는 길이 약 46m, 최고 높이 6.3m, 경사도 약 40°의 ‘허튼층 뉘어쌓기’ 방식으로, 내벽은 길이 약 55m, 높이 2.4m, 경사도 약 50°의 같은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외벽의 평면은 ‘一’자형이지만, 내·외벽 전체 평면은 ‘凸’자형을 이루며, 내벽 중앙부 두께가 약 14m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함지산의 험준한 지형에서 성벽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도의 설계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체성 외벽 하부와 내벽, 곡성2 등 초축 성벽 일대에서 2.3~2.7m 간격으로 뚜렷하게 확인된 세로 구획선은 당시 성곽 축조에 집단 분담 방식이 활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외벽에서만 14개가 확인된 이러한 구획선은, 집단별로 구간을 분담하여 축조하고 경계 부위는 상호 협력하는 효율적인 조직 운영 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자색이암과 응회암 등 현지에서 채석 가능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일부 구간에서 특정 재료만을 사용한 구역이 명확히 드러난 것은 한 집단이 채석, 운반, 축조까지 단일 공정을 책임지는 ‘책임시공’ 방식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의 노동력 동원 및 관리 체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팔거산성 발굴 성과는 신라의 국방 체계와 성곽 축조 기술 발전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는 유사한 시기에 축조된 다른 석축성벽 연구에도 중요한 비교 자료를 제공하며, 한국 고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대구광역시 북구청과의 협력을 통해 조사 성과를 구체화하고, 유적의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발굴 성과를 지속적으로 국민과 전문가에게 공유할 계획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