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각자의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작동하며, 이러한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가 ‘경제’를 핵심 이슈로 삼아 승리했듯,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정책 및 산업 분야에서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빌 클린턴 캠프 벽에 걸렸던 “Change vs. more of the same”(변화 vs 현상유지), “The economy, stupid”(경제야, 바보야), “Don’t forget health care”(의료보험을 잊지 마라)라는 세 가지 메시지는 당시 미국 유권자들의 관심을 국내 문제, 특히 경제 침체와 실업 증가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9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상대로, 클린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It’s the economy, stupid(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통해 경제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미국 남부의 작은 주지사였던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크게 기여한 전략이었다.
생태계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먹이사슬, 상호 수분, 분해 및 재생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 품종의 감자에만 의존하던 생태계가 감자역병으로 인해 괴멸적인 위기를 맞았던 사례로, 종 다양성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에너지가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어지는 에너지 흐름과 죽은 유기물이 분해되어 토양으로 되돌아가는 물질 순환은 생태계의 근간을 이룬다. 이러한 순환 구조가 단절될 경우 생태계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셋째,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지기 쉽다.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는 생태계의 생존력을 강화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폐쇄적인 환경에서 발생하는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례는 이러한 개방성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무시한 정책은 현재 여러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을 활성화하겠다며 조성된 혁신도시는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젊은 부부들이 정착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있다. 배우자 취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혁신도시로의 이주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인구 증가 없이 신도심 개발에만 집중하는 지방 도시들은 원도심 공동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으며 유령도시화되고 있다. 창원과 부산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교통망 부족으로 인해 심리적 거리가 먼 현상은 청년들이 ‘통근 전철’과 같이 필수적인 연결성을 갈망하지만,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 늘 난항을 겪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는 생태계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력을 뒤처지는 이유는 바로 이 ‘생태계’의 부재에 있다는 분석이다. 파운드리는 칩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 IP(지적 재산권) 기업, 패키징 및 후공정 등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 위에서 작동한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수나 패키징 기술 등에서 TSMC에 크게 뒤처지며,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생태계 전쟁’에서 밀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작에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생태계 싸움으로 전환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대부분이 각자의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생태계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가짜 정책이 되며, 이는 해가 지면 텅 비는 원도심이나 독수공방 신세가 된 혁신도시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현재의 상황을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모든 정책과 산업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생태계’ 중심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박태웅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며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주요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