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에서 경제 안보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가운데, 한국과 아세안이 최고 수준의 협력 관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를 수립하며 새로운 협력 지평을 열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국가 간의 외교적 성과를 넘어, 역내 안정과 공동 번영을 위한 다자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CSP는 아세안이 기존 대화상대국들과 맺는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으로, 주로 대화상대국의 제안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로서 그 위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번 CSP 수립은 한국이 호주, 중국, 미국, 인도, 일본에 이어 아세안과 CSP를 맺는 6번째 국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아세안은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중시하며 대화상대국과의 관계 관리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이 먼저 CSP를 제안했지만 아세안이 가장 먼저 체결한 국가는 호주였으며, 이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아세안의 고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아세안이 한국의 CSP 수립 제안을 수락한 것은 아세안이 직면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평가했음을 시사한다. 필자가 자카르타에서 만난 아세안 현지 전문가들 역시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한국을 공급망 및 과학·기술 분야의 핵심 협력 파트너로 강조한 바 있다.

CSP 수립은 단순한 상징적 의미를 넘어 한-아세안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세안은 CSP를 체결한 대화상대국에게 기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실질적이며 상호호혜적인’ 협력을 요구해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CSP 구축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120대 협력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협력 과제들은 ‘한-아세안 연대구상’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업들과 아세안의 요청을 반영한 신규 사업들로 구성된다.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미래지향적 협력을 촉진하는 과제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은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중대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한국의 경험과 기술력은 아세안의 디지털 경제 성장 가속화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아세안과의 인적 교류 확대는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불어 미중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아세안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지역 내 안정을 유지하고 다양한 비전통·신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과제는 이번 CSP 수립을 계기로 한-아세안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2025년은 아세안이 ‘공동체 청사진 2025’의 이행 결과를 최종 점검하고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를 채택하는 중요한 해이며, 동시에 한국과 아세안이 CSP 추진을 위한 새로운 행동계획(Plan of Action 2026-2030)을 마련하는 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는 한-아세안 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기틀을 다지고, 양측 관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