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최근 한미 무역협상 타결은 한국이 미국의 새로운 경제안보 구상에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지표로 분석된다. 특히 일본, EU 등 주요 제조 강국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 혜택을 확보한 동시에, 미국에 절실했던 조선 분야 협력을 레버리지로 활용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개방했더라도 경쟁국 대비 얻을 것이 적었던 국내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아낸 성과와 함께, 한국이 단순히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협상을 통해 실리를 얻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이번 한미 무역협상 타결을 세 가지 평가 기준, 즉 시간축에서의 절대 평가, 공간축에서의 상대 평가, 그리고 전지적 트럼프 시점에서의 평가를 통해 복합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절대 평가 측면에서 한국은 기존 한미 FTA 체제 대비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관세 15%라는 불리한 결과를 얻었으며, 이는 기존의 경제협력 템플릿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비망록 형태로 남겨진 합의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어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공간축에서의 상대 평가, 즉 한국의 주요 경쟁국들과의 협상 결과를 고려할 때, 한국은 일본, EU와 동등한 수준의 관세 혜택을 얻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조선 협력이라는 협상 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점과 국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최소화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에서 이번 합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약 40년간 지속된 트럼프의 자유무역 비판 숙원 사업의 일환이자, 미국의 경제안보 동맹 재편 전략의 핵심이다. 미국은 한국, 일본, EU를 ‘15% 클럽’으로 강제 편입시키며 중국 거대포위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베트남, 대만, 인도 등을 추가하고 멕시코와 캐나다를 북미요새론에 포함시키는 행보는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동맹국의 불만을 야기하고 미국의 고립을 초래할 위험성 또한 내포한다.

이번 합의는 한미 관계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변곡점을 나타낸다. 한국은 이제 미국에 조선, 반도체 등 제공할 것이 많은 국가로서 ‘15% 클럽’ 회원국이 되었으며, 이는 ‘한미동맹 2.0’의 시작을 알린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한국은 단기적으로 정상회담에서의 추가 요구 최소화와 합의의 불확실성 감소에 집중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미국의 동향에 대한 철저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관세 전쟁의 향방은 궁극적으로 미국 내 요인에 달려 있으며, 물가 상승의 악화는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미 FTA 경쟁 우위 상실 산업에 대한 다각적 지원이 불가피하며,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의 운명 또한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중장기 전략은 한국의 ‘15% 클럽’ 가입이 대중 제조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다만, 안보 비용 분담, 주한미군 및 한국군 역할 변경 등 ‘공정한 비용 분담’ 요구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은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예측 불가능한 한미 관계에 원칙 있는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핵심 제조업의 국내 산업 공동화 방지를 위해 미국 투자여건보다 우수한 국내 제조혁신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하며, 수출 시장 다각화와 더불어 내수 시장 외연 확대를 위한 남북 경제협력 여건 조성도 중요한 과제다.

또한, ‘15% 클럽’ 내에서는 강대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15% 클럽’ 밖에서는 규범 기반 다자무역질서 복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포용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며, 대통령실, 정부, 국회, 산업계, 시민사회의 총력적인 경제안보 전략 추진 체계 강화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