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쳐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정책이 도시와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 슬로건으로 ‘It’s the economy, stupid!’를 내세워 경제 문제에 집중하며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현시대의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거시적인 ‘생태계’ 관점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거시적 관점 없이 개별 현상만을 쫓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가짜 정책’에 불과하며, 지역 공동화나 산업 경쟁력 약화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생태계는 단순히 독립된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조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번성할 수 있다. 종 다양성은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얽혀 전체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은 생태계 내에서 끊임없이 자원이 흐르고 재생산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개방성과 연결성은 외부와의 건강한 교류를 통해 유전적 고립을 막고 생존력을 높이는 요소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 감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종 다양성이 파괴되면서 발생한 재앙은 생태계 파괴의 치명적인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현실에서도 이러한 생태계 원칙을 무시한 정책 사례들이 빈번히 발견된다. 지방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조성된 혁신도시는 젊은 부부들이 배우자 일자리 문제로 인해 정착하지 못하는 ‘독수공방’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다. 또한, 인구 증가 없는 신도시 개발은 기존 원도심의 공동화를 심화시켜 ‘유령도시’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창원과 부산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마음의 거리 500km’를 느끼는 것은 자동차 없이는 사실상 이동이 어려운 도시 구조와 통근 전철 도입의 난항 등, 생태계적 연결성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다.

반도체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에 뒤처지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생태계’ 경쟁에서의 패배가 지목된다. 파운드리 산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 등 다양한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IP 파트너 숫자나 패키징 기술 등에서 TSMC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는 것은, 이러한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개별 기술력 향상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생태계 자체를 번성시키는 전략이 필요했으나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상 만사의 대부분은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며,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과거 클린턴 전략가가 외쳤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처럼, 현재의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이러한 생태계적 접근만이 비로소 지역과 산업 모두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는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주요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