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전반에 걸쳐 ESG 경영이 확산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전력 산업 역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의 급격한 확대는 기존의 전력 시스템 운영 방식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FOCUS 보고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한 전력도매시장 구조 개선 방향’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전력도매시장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와 개선 방향을 제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큰 구조적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국내 전력도매시장은 화석 연료 중심의 발전원 구성에는 적합했으나,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며 한계에 봉착했다.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른 출력 변동성이 크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력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그림1’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일일 전력 거래량의 변동성을 증폭시키며 예측 가능성을 저하시키고 있다. 또한, ‘그림2’에서 나타나듯 시간대별 최대 거래량은 증가하는 반면, 재생에너지 활용 증가로 인해 전력 시장으로부터의 수요가 감소하는 시간대의 최소 거래량은 하락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러한 최대와 최소 거래량의 격차 확대는 발전 설비의 비효율적인 가동으로 이어져 전력 시장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변동성 완화와 출력 제어를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수요반응(DR)과 같은 유연한 자원의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력도매시장 내에서의 적절한 보상 체계, 즉 가격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력도매시장은 전력량, 용량, 보조서비스라는 세 가지 기능을 구분하여 보상한다. 전력량은 전력 공급 행위에 대한 보상이며, 용량은 언제든 전력 공급이 가능한 발전 설비 용량 확보에 대한 보상이다. 보조서비스는 실시간 수급 균형을 맞추고 주파수 및 전압 안정화를 통해 대규모 정전을 방지하는 기능에 대한 보상이다. 국내 전력도매시장에서는 재생에너지의 경우 안정적인 전력 공급 및 실시간 수급 균형 기여의 어려움으로 인해 용량 및 보조서비스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신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인증서 판매를 통한 별도 수익 구조를 가진다.
보고서는 이상적인 전력도매시장 환경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그림4’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용량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세 가지 경로를 제시한다. 첫째, 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없어 전력도매가격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다른 발전원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둘째, 변동성 확대는 다른 발전원에게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며, 이에 따라 동일한 수준의 예비용량 확보를 위해 더 높은 인센티브가 요구된다. 셋째, 재생에너지 출력 급감 상황에 대비한 더 많은 예비용량 확보 필요성은 용량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 또한, 천연가스 가격 변동과 같은 외부 요인도 용량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비싼 발전원인 가스 발전의 연료비 상승을 유발하며, 이는 다른 발전원의 수익성을 개선하여 용량 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보조서비스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빈번한 출력 변동을 야기하고 주파수 및 전압 이탈 가능성을 높여 보조서비스의 수요와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국내 전력도매시장은 이러한 이상적인 가격 결정 방식과는 다른 경직적인 가격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력도매가격은 정부가 연료비를 기반으로 변동비를 평가하여 결정하며, 이는 변동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나 ESS의 시장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전력 과잉 공급 시 어떤 재생에너지를 출력 제어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이 어려워 전력도매가격이 시장 운영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용량 가격은 노후 발전 설비를 기준으로 고정투자비를 평가하고 물가 상승 및 목표 예비력만을 반영하여 결정되므로, 신기술, 환경 규제, 금융 비용 변화 등 실질 투자비 변동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직성은 ‘그림5’에서 해외와 달리 국내 전력도매가격 상승 시 용량 가격이 하락하는 연계성을 보이지 못하게 하며, 영국과 같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른 용량 가격 급등 현상도 반영하기 어렵게 만들어 미래 전력 수요 확보 대응력을 저하시킨다. 보조서비스 시장 역시 ‘그림6’에서 보듯 공급량은 빠르게 증가하나, 보조서비스 가격 결정 방식이 직전 연도 실적에 연동되어 있어 수요가 많았던 해일수록 다음 해 가격이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며 보조서비스 투자 유인을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경직적인 가격 체계는 ESS와 같이 전력도매시장에서 필요한 자원들의 투자를 어렵게 만들고 시장 참여를 제약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보고서는 전력도매시장의 가격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력도매가격 결정 방식을 정부의 변동비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발전사들이 재생에너지를 포함하여 스스로 가격을 입찰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며, 용량 및 보조서비스 가격 역시 수요에 연동되어 결정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시장 기능 강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지배력 남용과 같은 잠재적 문제점에 대비하여 규제 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소매 요금 역시 전력도매시장 가격 변화와 연계되어야 한다. 도매 시장 가격 변화에도 소매 요금이 고정될 경우, 한전의 적자 누적이 불가피하며 전력도매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송전망 혼잡 등 지역별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역별 가격제 도입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필요한 기능에 대한 차등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지역별 가격제를 추진한다면 송전망 건설 지연으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