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국제사회가 분단과 대립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25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튼 역사적 사건이었다면, 현재 남북 관계는 완전한 단절 상태로 퇴보하며 ‘코리아 리스크’ 해소를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맥락 속에서, 최근 정부의 ‘평화적 두 국가’ 인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 교류협력 추진 방안은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을 위한 주목할 만한 실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실마리를 찾은 ‘두 국가’ 인정이라는 현실적인 접근 방식에 있다. 동서독은 냉전 시기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고 상호 국가성을 인정함으로써 평화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특히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은 정상적인 선린 관계 발전, 국경 불가침 재확인, 국제무대에서의 독립성 보장을 명시하며 화해·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국가성을 인정함으로써 체제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후 동방정책의 본격적인 추진을 통해 동서독 간 교류협력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토대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경제, 과학, 기술, 교통 등 다방면에서 실질적 협력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서독 폭스바겐의 동독 공장 투자와 엔진 반입 사업은 동독의 고용 창출, 기술 이전, 자동차 산업 현대화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서독 기업의 생산 단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상호 이익을 가져왔다. 이러한 경제 교류 확대는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평화가 경제를 안정시키는 선순환을 이루었다. 독일 통일 이후에도 이러한 경제 교류의 성과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바탕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으며, 이는 한반도 평화 경제 구축의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이번 정부의 ‘평화적 두 국가’ 인정은 과거 ‘강 대 강’ 대결 정책으로 인해 쌓인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고, 한반도에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로 존재해 온 현실을 인정하며 관계의 초점을 ‘적대성’에서 ‘평화’로 바꾸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독립된 회원국으로서 국제법적으로 주권을 존중받는 두 국가로 인식되어 왔으며,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불간섭할 것을 약속한 기존 합의와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원칙의 표명이다. 더 나아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북한 체제 인정, 흡수통일 미추구, 적대행위 불가’라는 3원칙은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약속이며, 독일식 흡수통일이 아닌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적인 결단으로 평가된다.

더불어, ‘E.N.D’ 이니셔티브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구상이다. 이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 사업으로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호혜적 교류협력의 기반을 회복하고 ‘평화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가 다시 평화를 공고하게 하는’ 한반도 평화 경제의 미래를 구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에곤 바르 박사가 개성공단과 같은 발상이라면 통일 이후 과정이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언급한 점은 이러한 교류협력이 갖는 잠재력을 시사한다.

물론, 남북 간 ‘강 대 강’ 대결로 인해 쌓여온 불신과 긴장의 벽은 아직도 높지만, 독일 속담처럼 “모든 시작은 어렵다(Aller Anfang ist schwer)”는 격언처럼, 정부는 지금 할 수 있는 평화의 조치부터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며 평화의 시대를 향한 대전환을 이루어낼 것이다. 과거 강대국들의 결정에 의해 분단된 역사를 넘어, 한반도 스스로 평화 공존과 평화 통일의 길을 개척해 나갈 용기를 가져야 할 때이며, 독일이 걸었던 평화와 화해 협력의 길을 따라 남과 북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깊은 통찰과 해법 제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