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다 21세의 젊은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 고 김문권 하사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7사단 소속 김문권 하사로 최종 확인했다. 이는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시작 이래로 261번째로 신원이 확인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이며, 올해로 열세 번째 신원 확인된 호국영웅이다.
이처럼 72년 만에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김문권 하사의 사례는 단순히 한 명의 전사자가 수습된 것을 넘어, 거대한 국가적 과업이자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6·25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용사들을 잊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의지는 ‘국가적 책임’과 ‘국민적 감사’라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고인의 남동생이 사망 전 형을 찾기 위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던 2010년의 노력과, 이후 국유단의 끈질긴 조사·발굴 노력이 결합되어 비로소 이번 신원확인이 가능했다는 점은, 한 개인의 숭고한 희생이 어떻게 국가적 기록과 기억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고 김문권 하사는 1953년 3월 입대하여 국군 제7사단에 배치된 후, 같은 해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치열했던 고지전 속에서 적과 맞서 싸우다 정전협정을 이틀 앞둔 7월 25일 전사했다. 1932년 6월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태어나 다섯 남매 중 둘째로 성장한 그는, 입대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를 남겨둔 채 전쟁터로 향하는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그의 숭고한 헌신은 1954년 화랑무공훈장 수여로 이어지기도 했으나, 전사 이후 배우자였던 전봉금 씨는 20세에 홀로 아들을 길러야 했고, 아들 김종주 씨 역시 20년 전 세상을 떠나 현재는 며느리 방금임 씨와 손자 김규남 씨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방금임 씨는 “시어머니께서 생전에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같이 묻히고 싶어 하셨는데, 이제 함께 합장해 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10월 21일 광주광역시 서구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으며, 유가족 대표인 친조카 김대중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큰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국가가 잊지 않고 유해를 찾아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조해학 국유단장 직무대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 및 유해 발굴 경과를 상세히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달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했지만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 전사자들의 신원확인을 위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는 여전히 절실하다. 6·25 전쟁 발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유가족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유단은 전국 각지에 계신 유가족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며,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보건소, 보훈병원 방문이 어려운 경우,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연락하면 직접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 김문권 하사의 귀환은, 국가가 잊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찾아내려는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