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계 전반에서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 과거 단편적인 정책이나 개별 기업의 고립된 노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비단 IT 산업뿐만 아니라 지역 균형 발전, 나아가 국가 경쟁력 확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핵심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각자의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며, 이러한 생태계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가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가 번성하기 위한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존재한다. 첫째,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한다. 먹이사슬로 연결되고, 서로의 생존을 돕거나 분해 및 재생산을 담당하는 등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 품종의 감자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례로, 1845년부터 1852년까지 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 에너지로부터 시작된 순환 구조가 깨지면 생태계는 붕괴한다. 쓰러진 나무를 곰팡이와 버섯, 세균 등이 분해하여 토양으로 되돌리는 과정처럼, 끊임없는 순환이 생태계의 생명력을 유지시킨다. 마지막으로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지기 쉽다. 외부와의 종 교류는 생태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며,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폐쇄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생태계적 관점에서 볼 때, 지방의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조성된 혁신도시와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은 예견된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젊은 부부들이 맞벌이를 하는 현실에서, 혁신도시로 발령받더라도 배우자가 일할 일자리가 없다면 해당 지역으로 이주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상황을 초래한다. 또한,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신도심에 아파트를 건설하면 기존 원도심은 유령도시처럼 텅 비게 된다. 대다수 지방 도시들이 겪고 있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은 바로 이러한 생태계적 단절의 결과다. 창원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50km도 채 되지 않지만, 지역 청년들은 마음의 거리가 500km라고 말한다.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청년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통근 전철’이지만 타당성 검토에서 늘 난항을 겪고 있다. 이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 결정의 전형적인 사례다.
반도체 산업 역시 ‘생태계 전쟁’으로 전환된 지 오래되었지만, 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압도적인 1위를 자랑했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운드리 산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패키징 및 후공정 기업 등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로 구성된다. 전문 칩 설계 회사가 만든 설계도를 파운드리의 공정에 맞게 다듬는 디자인 스튜디오, USB 포트와 같은 부품을 설계하지 않고 IP 회사로부터 구매하는 과정, 그리고 칩을 구운 후 패키징과 후공정을 거치는 일련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 모든 단계에서 TSMC의 생태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다. IP 파트너 수에서는 10배, 패키징 기술에서는 10년이나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이는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경쟁으로 바뀐 지 오래임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이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진작에 생태계를 번성시켰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대부분이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정책 및 산업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태계를 간과한 정책은 결국 해가 지면 귀신 나올지 모르는 원도심, 혼자 남겨진 듯한 혁신도시를 만들 뿐이다. 마치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캠프가 ‘Change vs. more of the same’, ‘The economy, stupid’, ‘Don’t forget health care’라는 메시지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복잡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필요하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현재의 상황을 묻는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