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IT 혁명을 시작으로 데이터 혁명을 거쳐 현재 AI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거시적인 흐름에 발맞추는 것이 국가 경쟁력 확보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AI 모델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창출하는 능력, 즉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국가적 목표 역시 이러한 인재 육성과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와 함께 청년 일자리 문제가 다시 한번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청년 고용률의 지속적인 하락과 더불어, 학업이나 취업 준비, 육아·가사 등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냥 쉬는 ‘쉬었음’ 청년이 4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사회적 단면을 보여준다. 일부에서는 청년 세대의 나약함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노동 시장을 이탈하는 주된 이유는 최저임금 이하의 낮은 급여, 열악한 근무 환경,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 ‘상식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 때문이다. 실제로 ‘쉬었음’ 청년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연봉 2823만 원 이상, 통근 시간 63분 이내, 주 3.14회 이내의 추가 근무, 개인의 성장과 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일자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상식적인’ 일자리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는 급증하는 반면, 청년 일자리는 줄어드는 불균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청년 일자리와 65세 이상 일자리의 비율은 1991년 8.3배에서 올해 0.8배까지 감소했으며, 지난해부터는 고령층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두드러지는 수치로, OECD 국가들의 경우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의 59% 수준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일자리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은 신산업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일자리 비중은 1991년 약 27%에서 올해 15%로 급감했으며, 이는 일본보다 훨씬 압축적인 속도로 진행된 탈공업화를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제조업이 제품의 설계나 디자인과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는 선진국에 의존하는, 이른바 ‘자기 완결성’을 결여한 생산 부문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는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소득 불평등 심화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급여 생활자 평균 소득 비중은 1991년 92% 이상에서 지난해 35% 미만으로 급락하며, 이는 주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이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령화 심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특히 자영업 분야에서 초고속 고령화를 초래하고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가 60세가 된 2015년 이후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5%에서 37%로 급증했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었다. 25~34세 핵심 노동력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606만 명에서 올해 8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으며, 30~34세 일자리 역시 1991년 8월 310만 명에서 2025년 8월 294만 명으로 줄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65세 이상 취업자는 같은 기간 339만 명이나 증가했다. 고령층은 은퇴 후에도 레드오션인 자영업에 내몰리거나 정부 지원 일자리에 의존하며, 청년 일거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은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정부는 AI 3대 강국으로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혁신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30년간의 산업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자기 비판과 함께 기존 시스템과의 ‘결별’이 필요하다. 과거 ‘한강의 기적’이 미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의 일부를 떠맡는 ‘식민지형 산업화’였다면, AI 3대 강국은 자기 완결적인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은 디지털 생태계의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할 뿐만 아니라, 획일주의와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인재를 육성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여 전에 없던 답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이 플랫폼 사업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 역시, ‘위계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과 이익 공유와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 모델의 문화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 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진화시키지 못한 결과, 한국은 ‘데이터 혁명’과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며, 이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표 기업이 모바일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조차 AI 대전환 과정에서 2류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AI 기반 산업 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 모델을 활용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과 ‘쉬었음’ 청년 대상 생활비 지원을 포함한 ‘AI 전사 육성’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필수적이다. ‘AI 전사’는 획일주의와 줄세우기, 극한 경쟁 환경의 산물인 모노칼라 인재를 만들어내는 현행 교육 시스템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그 결과물이 산업 혁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AI 인프라와 AI 모델에서 2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20%에 가까운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는,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이는 성공적인 AI 대전환이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AI 전사들에 의한 새로운 시도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또한,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사회 소득 제도화를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사회 소득의 제도화야말로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