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를 맞아 정부가 공개한 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는 단순한 역사적 유물 공개를 넘어 오늘날 기업 경영의 핵심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기업의 규모와 상황에 관계없이 지켜야 할 윤리적 태도의 근본을 관통한다.

이는 ESG 경영의 진정성 문제와 직결된다. 재무적 성과가 어려운 기업이 생존을 위해 규제 기관이나 투자자에게 과장된 친환경 성과를 내세우는 ‘그린워싱’은 ‘빈이무첨’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반대로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독단적 경영을 펼치는 행태는 ‘부이무교’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다. 이번 유묵 공개는 이러한 기업 행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묵은 일본 도쿄도립 로카기념관 소장품으로, 일본 문호 도쿠토미 로카가 남긴 논평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는 안 의사의 정신이 국경과 시대를 넘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국내 기업들 역시 국적을 넘어 보편타당한 윤리 기준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춰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안 의사의 메시지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요구한다. 단기적 이익이나 평가에 급급해 본질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칙과 철학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경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업의 ESG 담당자와 투자자들은 이번 유묵 공개를 단순한 역사적 이벤트가 아닌, 기업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계약을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