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양자 협력을 통해 공급망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국 상무부 및 공업정보화부와 연쇄 장관급 회담을 갖고, 희토류 등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의 무기화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위기관리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 제고다. 양국은 물류 지연이나 원자재 수급 위기 발생 시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을 만들고,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수출통제대화’ 채널을 활용해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희토류와 영구자석 등 전기차 배터리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이 직접 거론된 것은, 정부가 국내 주력 산업의 밸류체인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를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음을 시사한다.

산업 협력 분야에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양국 교역액의 26%를 차지하는 반도체 분야는 정책적 소통을 강화하고,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와 같은 외부 변수 속에서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실리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산업 역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의를 지속하기로 해,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관리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합의는 정부가 기업의 ESG 경영, 특히 공급망 실사(Due Diligence) 의무 강화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정부 간 협의가 개별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모든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기업들은 이번 정부 간 합의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공급망 다변화 및 내재화 전략을 더욱 가속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향후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과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까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이번 합의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