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과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와 산업 협력에 합의하며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나섰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ESG 규제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양국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단순한 우호 증진을 넘어, 글로벌 밸류체인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려는 양국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번 상무·산업장관회의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 확보다. 특히 희토류, 영구자석 등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핵심 품목에 대해 ‘수출통제대화’ 채널을 가동하기로 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특정국의 자원 무기화 리스크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국내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의 공급망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한 물류 대란이나 원자재 수급 위기 시 ‘공급망 핫라인’을 즉시 가동하기로 한 것은 과거 요소수 사태와 같은突발 변수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 협력 논의는 미국의 대중국 규제에 대한 양국의 공동 대응 성격이 짙다. 양국 교역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정책 소통을 강화하고, 중국 내 우리 기업 공장의 원활한 가동을 보장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법(CHIPS Act)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다. 배터리 산업 역시 IRA의 해외우려단체(FEOC) 규정으로 얽혀 있는 만큼, 양국 간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협의한 것은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기존 생산기지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이중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더 나아가 산업의 ‘그린 전환’ 협력은 미래 무역질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는 EU의 규제는 양국 모두에 상당한 부담이다. 이에 양국이 산업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 구축 경험을 공유하기로 한 것은, 향후 제품의 전 과정 탄소 발자국을 추적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실무적 협력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산업 데이터 표준화 및 호환성 확보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결론적으로 이번 한중 장관회의는 탈동조화(decoupling)가 아닌 위험관리(de-risking)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양국의 현실적 노선을 명확히 보여줬다. 다만 고위급 합의가 실질적인 기업 활동의 안정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행 방안과 후속 조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이념과 규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